항체 다양성 규명부터 기억 인그램 조작까지, 분자생물학 거장 토네가와 스스무의 반세기 궤적

배경
1970년대 분자생물학계는 인체 면역계가 무수한 병원체를 구별해 항체를 형성하는 방식을 밝히지 못했다. 제한된 유전체 정보로 수십억 종의 항원 결합 부위를 구축하는 원리는 당대 생명과학의 난제였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자가 불변을 유지한다는 고전 유전학 원칙 아래 배세포설과 체세포 돌연변이설이 팽팽히 맞섰다. 인간의 몸은 한정된 유전자로 어떻게 무한에 가까운 항원과 맞설 수 있는가? 당시 기술로는 성숙한 면역세포 안의 유전자 변화를 추적하기 어려웠다.
면역계 원리를 규명한 뒤에도 시선은 머물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로 옮겨 신경생물학이라는 낯선 영역에 발을 들였다. 기억은 뇌 속 어디에 물리적 흔적으로 새겨지는가? 20세기 초 제안된 기억 인그램(engram) 가설은 백 년 가까이 증명이 불가능한 이론에 머물렀다. 특정 기억을 담당하는 신경세포 군집만을 선별해 조작할 방법론이 부재했던 셈이다.
핵심 발견
스위스 바젤 면역학 연구소 시절 마우스 배아세포와 형질세포종 성체 B세포의 면역글로불린 유전자 구조를 면밀히 대조했다. 제한효소로 자른 디옥시리보핵산(DNA) 절편을 전기영동으로 분리하고 메신저 리보핵산(mRNA) 교잡 분석을 적용해 두 세포군 사이의 배열 차이를 추적하는 방식이었다. 분석 결과는 학계의 고정관념을 뒤흔들었다. 배아 상태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가변(V) 영역과 불변(C) 영역 유전자가 B세포 분화 과정에서 물리적으로 재조합되어 결합함을 확인했다. 분화 단계에서 유전자 절편이 잘리고 다시 이어지는 체세포 재배열(somatic recombination) 기전을 세계 최초로 밝혀낸 순간이었다. V, D(다양성), J(결합) 조각이 조합되며 수억 종의 항체를 생성한다는 사실을 1976년 입증해 1987년 노벨 생리의학상 단독 수상의 영예가 주어졌다.
신경과학 분야에서는 유전학적 정밀성을 뇌 회로 분석에 이식했다. 1990년대 해마 CA1 영역에서 선택적으로 NMDA 수용체가 결핍된 생쥐를 제작해 시냅스 장기상승작용(LTP)과 공간 기억의 상관성을 명쾌히 증명했다. 2012년에는 광유전학(optogenetics)을 접목해 인그램 가설을 실험실 안에서 완벽히 입증해 보인다. 신경세포 활성 지표인 c-Fos 프로모터와 채널로돕신-2(ChR2) 발현 카세트를 아데노부속바이러스(AAV)에 실어 생쥐의 해마 치아이랑(dentate gyrus)에 주입했다. 전기 충격을 받을 때 활성화된 세포에만 청색광 반응 단백질이 표지되도록 유도한 전략이다. 학습 경험이 없는 낯선 상자에 생쥐를 넣고 473나노미터 파장의 청색 레이저를 비추자, 동물은 공포 기억을 떠올리며 몸을 굳히는 동결 행동(freezing)을 나타냈다. 2013년에는 광자극과 새 환경 자극을 결합해 존재하지 않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허위 기억 생성까지 구현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의미와 전망
규명된 유전자 재배열 원리는 현대 생물공학과 의학의 지형을 바꿨다. 항체 결합 부위가 조합을 형성한다는 사실은 특정 항원만 표적하는 단일클론항체(monoclonal antibody) 개발을 촉진했고, 오늘날 항암 항체 치료제와 면역진단 기술의 밑거름이 됐다. 감염원에 대응하는 면역 체계의 작동 방식을 분자 수준에서 입증한 결정적 이정표였다.
신경과학 분야에 남긴 유산도 강한 파급력을 낳고 있다. 기억을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조작 가능한 세포 집합체로 규명함으로써 퇴행성 뇌질환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연구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 알츠하이머병 초기 기억 상실이 저장 결함이 아닌 인출 회로 이상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후속 연구가 대표적 사례다.
동물 모델에서 얻은 성과를 사람 뇌에 직접 적용하기에는 기술적 장벽이 높다. 해마 치아이랑의 신경망 조작이 대뇌피질 전역으로 흩어지는 복잡한 장기 기억망을 온전히 대변하는지 규명할 과제가 남았다. 뇌 조직에 침습적 광섬유를 삽입하거나 바이러스 벡터를 투입하는 방식의 임상적 한계도 극복 대상이다. 분자유전학의 엄밀함으로 미개척 분야를 정복해 온 토네가와 교수의 학문적 발자취는 미래 생명과학 연구의 영원한 나침반으로 남는다.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Volume 123, Issue 44, November 2026. Susumu Tonegawa transformed two fields of biology. His discovery of the genetic mechanism generating antibody diversity established the foundations of modern immunology and earned him the 1987 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 Remarkably, he then ...
면역글로불린 재배열 원리는 리툭시맙(Rituximab), 트라스투주맙(Trastuzumab) 등 현대 블록버스터 표적항암제와 면역관문억제제 설계의 초석으로 자리 잡았다. 무작위 유전자 재조합 기전을 인공적으로 모사한 파지 디스플레이(phage display) 및 유전자 재조합 기술은 제약 산업에서 신약 후보 항체를 신속하게 발굴하고 스크리닝하는 표준 공정으로 확립됐다.
기억 인그램 조작 기술은 신경정신과 임상 현장의 난치성 질환 치료에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한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환자에게 공포 반응을 촉발하는 특정 인그램 세포군을 비침습적 신경조절술이나 정밀 분자 표적 약물로 선택적 억제하는 시나리오가 대표적이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손상된 기억 인출 경로를 표적 자극해 가려진 기억을 복원하는 정밀 신경치료 전략도 임상 적용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