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농무부 1억 8000만 달러 투입, 국가 종자은행 속 잠든 유전 자원 전면 해독 나선다

배경
기후변화와 병충해 확산으로 세계 농업 생태계가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했다. 극심한 가뭄과 예측 불가능한 이상고온은 전통적인 주요 작물의 생산량을 급격히 떨어뜨리고 있다. 전 세계 연구진과 육종가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고자 야생 근연종과 재래종의 유전적 형질에 주목해 왔다.
미국 농무부(USDA) 산하 농업연구청(ARS)을 비롯한 연구 기관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수십만 점에 이르는 전 세계 식물 유전자원을 수집하여 국립 유전자원 시스템(NPGS) 등 종자은행에 보관해 왔다. 저장고에 냉동 보관된 종자 표본들은 가뭄 저항성, 내병성, 높은 영양 성분 등 유용한 특성을 품고 있는 보물창고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정작 이 거대한 저장고는 오랫동안 닫힌 상자와 같았다. 수집된 종자의 외형적 특징이나 기본적인 생육 정보만 기록되었을 뿐, 실제 어떤 DNA 서열과 대립유전자가 특정 형질을 발현시키는지 정밀하게 해독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육종가가 특정 병원균에 강한 유전자를 찾으려면 수백, 수천 종의 씨앗을 직접 심고 길러서 교배해 보는 지루한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막대한 보존 비용 대비 실제 품종 개량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던 배경이다.
핵심 발견
미 농무부는 국립 종자은행에 보관된 방대한 작물 유전자원의 DNA 서열을 대규모로 규명하기 위해 1억 8,000만 달러 규모의 신규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투자는 단순한 개별 작물 조사를 넘어, 미국 국립식물유전자원시스템에 보존된 주요 식량 및 경제 작물 십만여 점 이상의 유전체 변이를 고해상도로 지도화하는 국가적 규모의 사업이다.
연구진은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과 긴 읽기(Long-read) 시퀀싱 기술을 병합하여 참조 유전체(Reference Genome)를 고도화하고 판게놈(Pan-genome) 생태계를 구축할 방침이다. 단일 품종의 표준 서열에만 의존하던 기존 유전체학은 유전자 결실이나 대규모 구조 변이를 포착하기 어려웠다. 이번 사업은 옥수수, 콩, 밀, 수수, 면화 등 핵심 작물뿐 아니라 기후 탄력성을 지닌 야생 조상종까지 대량 분석 목록에 포함시켰다.
유전체 분석 파이프라인에는 고속 시퀀싱과 인공지능 기반 변이 주석화 기술이 결합된다. 연구진은 각 종자 계통의 전체 게놈 염기서열을 수집하는 동시에, 농업연구청의 방대한 표현형 데이터베이스와 유전형 데이터를 연계할 계획이다. 유전자 위치와 기능을 디지털 카탈로그 형태로 전환함으로써, 전 세계 육종가들이 브라우저 검색만으로 특정 환경 저항성 유전자를 즉시 추적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게 된다.
의미와 전망
수십만 점의 식물 표본을 디지털화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분자 육종의 패러다임을 물리적 교배 선발에서 데이터 주도형 정밀 육종으로 전환시키는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연구자들은 크리스퍼(CRISPR) 유전자가위 기술을 활용해 야생종에서 발견한 우수 스트레스 내성 유전자를 기존 고수율 품종에 정밀하게 도입하거나, 유전체 선발(Genomic Selection) 알고리즘의 예측 정확도를 대폭 끌어올릴 수 있게 된다.
기대 효과가 큰 만큼 선결 과제도 명확하다. 방대한 서열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개방형 플랫폼을 관리·유지하는 컴퓨팅 인프라 비용이 만만치 않다. 또한 염기서열 정보가 확보되더라도, 온습도와 토양 조건이 상이한 실제 포장에서 해당 유전자가 동일한 저항성 형질을 발현하는지 검증하는 포장 표현형 분석(Field Phenotyping) 병목 현상을 해소해야 한다.
Department of Agriculture will expand effort to describe genetics of seed banks
이번 종자은행 유전체 빅데이터 구축은 종자 기업과 스마트팜 농업 현장의 신품종 개발 주기를 획기적으로 단축시킨다. 지금까지 새로운 가뭄 저항성 옥수수나 염해 내성 콩 품종을 개발하여 농가에 보급하기까지 통상 10~15년의 교배와 선발 기간이 소요됐다. 유전체 정보가 완전히 디지털화되면 육종가는 유전자 칩 분석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활용해 실험실 단계에서 유망 교배 조합을 신속하게 선별할 수 있다. 품종 개발 기간을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는 셈이다. 나아가 민간 종자 스타트업이나 공공 연구기관도 값비싼 스크리닝 과정 없이 표적 유전자를 특정하여 질병 저항성 유전자 교정 작물을 설계할 수 있어, 이상기후에 대응하는 차세대 식량 안보 기술 확보가 한층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