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속에 심은 유전자 스위치와 약물의 결합, 난치성 뇌전증 환자 발작을 90% 잠재웠다

배경
뇌전증은 뇌 신경세포의 비정상적인 과흥분으로 경련과 발작이 반복되는 신경계 질환이다. 환자 다수는 항경련 약물로 증상을 관리하지만, 전체 환자의 30%가량은 두 가지 이상의 약물을 복용해도 발작이 통제되지 않는 약물 난치성 뇌전증을 겪는다. 약물 치료에 실패한 환자에게는 발작이 시작되는 뇌 부위를 외과적으로 잘라내는 절제술이나 전기 신호로 뇌를 자극하는 신경자극술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수술적 접근에는 뚜렷한 한계가 존재한다. 뇌전증을 일으키는 병소가 언어, 기억, 운동을 담당하는 핵심 기능 영역에 자리 잡고 있으면 뇌 조직을 절제할 수 없다. 정상적인 뇌 기능을 잃을 위험이 매우 높은 탓이다. 기존 뇌 수술이나 전극 삽입은 비가역적인 신경 손상 위험을 동반하며, 신경자극 장치 역시 발작 발생 자체를 완벽히 억제하기에는 반응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정상 뇌 조직을 보존하면서 병소 부위의 흥분성 신경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정밀 제어 치료 기술 개발이 학계의 지속적인 과제였다.
핵심 발견
중국 베이징 쉬안우 병원 신경외과 양 다이 연구팀은 변형된 바이러스 벡터와 경구 투여 약물을 결합한 화학유전학(chemogenetics) 기술을 적용해 약물 난치성 뇌전증 환자를 치료한 초기 임상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에 게재되었으며 네이처 뉴스를 비롯한 국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임상에는 10년에서 25년 동안 기존 약물 치료로도 발작이 멈추지 않던 성인 난치성 뇌전증 환자 3명이 참여했다. 연구진은 무해하게 개조한 아데노부속바이러스(Adeno-Associated Virus, AAV)를 뇌 속 발작 유발 부위에 정밀 미세 주입했다. 전달된 AAV는 흥분성 신경세포에만 결합하도록 설계된 조작 수용체 유전자를 발현시킨다. 이 수용체는 인체 내부 물질에는 반응하지 않고, 특정 화합물에만 선택적으로 반응하는 유전자 스위치 역할을 수행한다.
환자들에게 저용량 클로자핀(clozapine)을 투여하자 약물이 조작 수용체에 결합하면서 신경세포의 과도한 전기적 흥분을 신속하게 가라앉혔다. 뇌세포의 출력을 조절하는 조광기처럼 신경 전달을 차분하게 낮추는 방식이다. 치료 결과 환자 3명 전원에서 월평균 발작 빈도가 90% 이상 감소했다. 일상생활을 마비시키던 빈번한 발작이 거의 사라졌으며, 임상 관찰 기간 중 중대한 신경학적 결손이나 심각한 이상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다. 기존의 뇌 조직 절제 없이 정밀한 생체 스위치와 저용량 약물 투여만으로 신경망의 과활성을 억제해 낸 셈이다.
의미와 전망
이번 성과는 인체 중추신경계에서 화학유전학 기술의 임상적 유효성을 확인한 최초 수준의 결과다. 수술용 칼로 뇌를 도려내지 않고도 신경세포의 활성을 가역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특히 약물 투여 주기와 농도를 조절함으로써 환자 상태에 맞추어 억제 강도를 미세하게 바꿀 수 있다는 점은 기존 수술이 갖지 못한 강점이다.
치료제의 상용화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분명하다. 대상 환자가 3명에 불과한 1상 초기 연구이므로 통계적 신뢰성을 확보하기에는 표본 크기가 작다. 전달된 유전자가 뇌세포 안에서 얼마나 오래 발현을 유지하는지, 반복 투여되는 조절 약물에 내성이 발생하지 않는지에 대한 장기 추적 조사가 필요하다. 바이러스 벡터에 대한 숙주 면역 반응과 미량의 약물이 장기 복용 과정에서 나타낼 수 있는 잠재적 대사 영향도 면밀히 검증되어야 한다. 후속 연구진은 더 많은 환자군을 대상으로 무작위 대조 임상을 진행해 안전성과 재현성을 입증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Nature, Published online: 04 November 2026; doi:10.1038/d41586-026-03566-2A clinical trial in three people tested a combination of gene-laden viruses and a drug.
외과적 절제가 불가능했던 기능 영역 뇌전증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경로를 열어준다. 운동이나 언어 중추와 인접해 손을 댈 수 없었던 부위에 AAV를 국소 투여해 수용체를 발현시켜 두면, 환자는 정기적인 경구 약물 복용만으로 발작을 사전에 통제할 수 있게 된다. 뇌 조직을 물리적으로 파괴하지 않는 덕분에 인지 및 운동 기능 보존율이 비약적으로 향상된다. 산업적 측면에서도 단회 투여 유전자 치료제와 유지용 저분자 화학 치료제를 결합한 융합형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의 등장을 예고한다. 이 제어 기전은 뇌전증을 넘어 특정 신경 회로의 과흥분이 원인인 파킨슨병, 난치성 통증, 근긴장이상증 등 다양한 뇌질환 치료 파이프라인으로 빠르게 확장될 수 있다.